부부 재산 일방 처분과 재판상 이혼 사유
“수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배우자가 집과 땅을 자녀 한 사람에게 모두 증여하였습니다. 외도나 폭행은 없었는데 이혼할 수 있을까요?” 오래 함께 산 부부의 이혼 상담에서 종종 나오는 질문입니다. 재산을 처분한 배우자는 “내 명의 재산을 처분했을 뿐”이라고 반론하곤 합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배우자 명의 재산의 일방적 처분이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되는지를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9. 4. 선고 2025므10730 판결). 부부가 함께 이룬 재산이라면 명의와 관계없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재산의 주요 부분을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배우자와의 협의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여 가정의 경제적 기반을 위태롭게 하고, 재산 처분으로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상대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판례의 요지입니다.
사건의 경위
원고(이혼을 청구한 배우자)는 1938년생, 피고(재산 명의자인 배우자)는 1932년생으로 1961년 혼인신고를 한 부부이고, 원고와 피고는 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혼인 중 취득·유지한 재산은 원고가 상속받은 약간의 재산을 빼고는 모두 피고 명의였고, 피고 명의 재산에는 원고와 피고가 살아온 주택과 대지, 원고와 피고가 함께 농사를 지어 온 농지 5필지(2필지는 피고가 혼인 전에 취득) 등이 있었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살던 주택과 대지가 수용 절차에 들어가면서 2022. 3. 23. 피고 앞으로 수용보상금 299,832,460원이 통보되었습니다. 피고는 수용보상금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원고와 다투다가, 원고의 반대에도 수용보상금에 관한 권리를 장남에게 증여하였습니다. 원고는 2022. 6.경 집을 나와 피고와 별거를 시작하였습니다. 피고는 2022. 7. 15. 농지 5필지 전부(감정가 약 15억 1,113만 원)도 장남에게 증여하고 2022. 7. 26. 장남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습니다.
원고는 2022. 8. 11. 피고를 상대로 이혼과 재산분할을 청구하였습니다. 피고는 장남에게 증여한 재산이 모두 피고의 특유재산(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므로 피고가 특유재산을 처분한 것은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혼을 거부하였습니다.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원심의 판단 — 혼인 파탄을 인정하기 어렵다
제1심 법원은 원고(이혼을 청구한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원심(대전고등법원)도 원고와 피고(재산 명의자인 배우자)의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제1심 법원의 판단을 유지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함께 이룬 재산의 일방적 처분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냄)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혼인생활 중 부양·협조의무 등을 통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주요 부분을 부부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배우자와의 협의나 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는 등으로 가정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상대방 배우자의 기초적인 생존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생활을 매우 곤란하게 하는 것으로서 그로 인하여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한쪽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라면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든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고(이혼을 청구한 배우자)와 피고(재산 명의자인 배우자)는 살던 주택의 수용 절차 때문에 새 거주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피고는 원고의 반대를 무시하고 수용보상금에 관한 권리 전부를 장남에게 증여하였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집을 나간 뒤에도 새 주거나 원고의 생활비에 관한 계획을 제시하며 원고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원고가 집에 없는 사이 원고와 상의 없이 농지 5필지 전부를 장남에게 증여하였습니다. 피고가 장남에게 증여한 재산은 18억 원이 넘고, 피고가 종중 또는 종중원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부동산까지 넣으면 전체 재산의 약 77%이고, 종중 또는 종중원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부동산을 빼면 90%를 넘습니다. 원고와 피고의 별거는 원심 변론종결 때 3년 가까이 되었고,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의 갈등이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 전체로 번졌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의 갈등 내용과 정도, 별거 경위와 기간 등을 고려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의 애정과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원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무엇을 알아 두어야 할까
배우자 명의 재산이라도 부부가 함께 이룬 재산이라면, 명의자의 일방적 처분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재산분할 제도가 명의와 관계없이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을 나누게 하고 재산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협력도 재산분할에서 말하는 협력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피고(재산 명의자인 배우자) 단독 명의인 주택·대지와 농지 5필지를 원고(이혼을 청구한 배우자)와 피고가 함께 이룬 재산으로 보았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피고가 장남에게 한 증여가 유효한지가 아니라 피고의 재산 처분이 이혼 사유가 되는지를 다룬 것입니다.
모든 증여나 처분이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가 처분한 재산의 비중, 피고가 원고의 반대에도 연이어 재산을 처분한 경위, 원고와 피고의 3년 가까운 별거를 함께 고려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파기환송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최종 결론은 환송 후 대전고등법원이 다시 심리하여 내립니다.
부부가 함께 이룬 재산을 배우자가 상의 없이 처분하였다면 처분된 재산의 성격과 처분 경위, 남은 재산, 별거 사정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산 처분을 이유로 이혼 청구를 받으신 분도 재산을 처분한 경위와 이유를 이혼소송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미리 살펴 두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보시려면 리윤 법률사무소에 상담을 요청하세요.
리윤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