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사망 후 상속인 전세 연장계약 한정승인
전세 기간 중에 집주인이 돌아가시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누구에게 돌려받아야 하는지 걱정하게 되고, 상속인들은 돌아가신 분의 보증금 채무를 자기 재산으로까지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올해 5월 대법원은 집주인의 상속인들이 세입자와 전세 연장계약을 맺은 사안에서, 그 계약 때문에 한정승인한 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되는지를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6. 5. 8. 선고 2025다220329 판결).
한정승인과 법정단순승인
상속인은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에서만 돌아가신 분의 빚을 갚겠다는 조건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정승인입니다.
민법 제1028조(한정승인의 효과) 상속인은 상속으로 인하여 취득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할 수 있다.
그런데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하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봅니다. 단순승인이 되면 상속인은 돌아가신 분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 없이 물려받게 되어, 자기 재산으로도 빚을 갚아야 합니다(민법 제1025조).
민법 제1026조(법정단순승인)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
1.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
사건의 경위
세입자인 원고는 2020. 3. 27. 집주인과 보증금 1억 6,000만 원, 기간 2020. 5. 11.부터 2년으로 하는 전세계약을 맺었습니다. 집주인은 불과 두 달여 뒤인 2020. 6. 4. 사망하였고,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인이 되었습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원고는 상속인 중 한 사람인 피고에게 “상속받은 다섯 분께서 빨리 서둘러 연장계약서를 써주셔야 제가 대출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속등기가 이미 되어 있어서, 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상속인들이 임대인으로 적힌 계약서를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피고는 2022. 5. 4. 가정법원에 한정승인 신고를 하였고, 이튿날인 5. 5. 상속인 전원이 원고와 보증금과 조건은 그대로 두고 기간만 2년 늘리는 계약서를 작성하였습니다. 특약사항에는 “본계약은 2020. 3. 27. 계약의 2년 연장계약이며, 계약조건은 같다.”는 문구와 함께, 집주인의 사망으로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 임대인으로서 전세보증금을 그대로 승계하고 기간을 연장한다는 내용, 임차인의 전세대출 연장에 협조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가정법원은 2023. 4. 7. 피고의 한정승인 신고를 수리하였습니다.
그 뒤 원고가 상속인들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구한 소송에서, 피고가 한정승인 신고가 수리되기 전에 연장계약을 맺은 것이 상속재산의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원심의 판단 — 처분행위이므로 단순승인
원심(서울남부지방법원)은 피고가 연장계약을 맺은 것은 기존 보증금반환채무나 새 계약에 따른 보증금반환채무를 피고 자신의 채무로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어서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따라서 피고는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처분이 아니라 관리행위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피고가 진 부분을 파기하였습니다. 먼저 법리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여기서 ‘처분행위’는 재산의 현상 또는 그 성질을 변하게 하는 사실적 행위 및 재산의 변동을 생기게 하는 법률적 행위를 포함한다 할 것이나 상속재산의 보존 및 관리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정을 들었습니다.
계약 내용이 그대로였습니다. 상속인 전원이 공동임대인으로 맺은 계약으로 목적물, 보증금, 차임이 모두 같고 기간만 2년 늘었습니다. 특약에도 연장계약이며 보증금반환채무를 “그대로 승계”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세입자의 요구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상속인들이 계약서를 써 준 것은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려는 원고의 요구에 응한 결과로 보일 뿐, 단순승인하겠다는 뜻이나 보증금반환채무를 자기 채무로 지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상속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어 연장계약을 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처분행위로 보면 오히려 상속인이 뜻밖의 손해를 입습니다. 이를 처분행위로 보지 않아도 원고가 불의의 손해를 입는 것은 아니지만, 처분행위로 보아 상속인의 고유재산에 강제집행을 허용하면 상속인에게 불의의 손해를 가하게 되어 한정승인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체결 행위는 민법 제1026조 제1호의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가 아닌, 민법 제1022조에 의하여 상속인이 부담하는 상속재산 관리의무의 이행행위, 즉 관리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알아 두실 점
상속인이라면 세입자의 대출 연장을 돕기 위해 같은 조건으로 기간만 늘린 계약서를 써 주었다고 해서 곧바로 단순승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법원은 계약 내용과 체결 경위를 종합하여 판단하였으므로, 보증금을 올리거나 조건을 바꾸는 계약이라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정승인은 원칙적으로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해야 하고(민법 제1019조 제1항),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뒤늦게 알게 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할 수 있습니다(같은 조 제3항).
세입자라면 상속인들이 연장계약서에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한정승인한 상속인의 개인 재산으로 보증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정승인한 상속인에게는 상속재산의 한도에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등 보증금을 지킬 장치를 미리 갖추어 두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사건은 파기환송되어 서울남부지방법원이 다시 판단하게 됩니다.
집주인이 돌아가신 뒤의 전세 계약이나 상속으로 떠안게 될 채무 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다면, 계약서와 등기부를 가지고 리윤 법률사무소에 상담을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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